2010년 7월 2일 금요일

소아 정신과

정신과 실습을 하기 전에 이미 악명이 높은 소아과 실습을 했기 때문에 도착한 정신과의 모습은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환자와 말만 좀 하고 병이 있다고 하며, 병의 진단조차 확실하게 확립된 것이 아직 없기 때문에 거의 보는 의사마다 질병이 달라지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정신과 실습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정신과에 대한 인식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 비슷하게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아 병동에 오기 전에 이미 2주간 성인 폐쇄병동에서 실습을 했었고, 실습을 할 때 보고 듣고 느낀 점이 있었기에 소아 병동에 부푼 기대를 하고 실습을 시작했다.

 

환자를 배정 받고 환자에게 선입견을 가지기 전에 환자를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과 실습에서는 의례 했었던 전자의무기록을 보며 진단을 우선 어떤 것인지 머리에 넣지 않고 그냥 환자의 이름과 주요 진단 이름만 전해 듣고 실습을 시작했다. 정신과의 모든 진단 기준을 확실하게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oppositional defiant disorder는 단순하게 conduct disorder의 약한 모습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주치의를 통하여 물론 정확한 진단은 내려졌겠지만, 나름 본과생으로 주치의 선생님이 놓친 진단을 내리고 싶었다. 그래도 실습 수업이었으니.

 

환아를 배정받고 환자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서로 서먹서먹한 관계가 한동안 유지되었다. 환자에게는 특별하게 또 다른 의대 실습생이라 특별하게 대접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병동에서 약 30분 정도 있었는데 밖에서는 이미 병동에서 어떤 환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이가 많은 환자들이 환자에게 무리한 요구 사항을 지시했어도 따르는 것을 보고는 환자의 무기력함이 느껴진 것이었다. 하지만, 말을 안하고 있어도 내가 원래 좀 궁금한 것이 많아하는 성격인지라 막 이것 저것을 물어보면서 대화를 옆에서 시키자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화를 조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환자를 좀 더 궁금한 눈으로 보며 서로 만나는 시간이 지속되자 환자도 좀 귀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한 듯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신변잡기부터 시작했지만 날이 지나갈수록 환자의 속마음에 대하여 약간씩이나마 보이는 것이었다. 만남 초기에 목소리의 변화가 전혀 없으며 느릿느릿한 말투는 어느 순간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물론, 환자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더 알아차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이 레포트를 제출하는 내일이면 환자와 만남도 끝이다. 아직 나에게 못해준 말이 많다는 것은 오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것에서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집에 오면서 정신과 의사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 아니 환자에게 진정으로 좋은 의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을 할 수 있었다. 환자의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맞장구 친다고 좋은 의사가 아닐 것이지만 환자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의사는 정말로 아닐 것이다.

 

p.s. 의무기록은 아직도 못 보았을까?